야만의 시대, 폭력의 시간 – 두개의 문과 의자놀이
몇주 전에 공지영 작가의 ‘의자놀이’를 읽었다.
쌍용자동차 사태에 대한 르포르타쥬라는 이 책은 쌍용자동차 사태에 대해서 공지영 작가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진실을 찾아 가는 형태로 이뤄져 있다.
이 책을 읽고 곧바로 용산참사에 대해서 다룬 다큐멘터리 두개의 문을 보고 싶어져서 주변을 검색해봤다. 마침 근처에서 하는 곳이 있기에 와이프와 함께 보고왔다.
(참고로 데이트무비로서 ‘두개의 문’은 전혀 권장할 만한 영화는 아니다. 와이프와 연애시절 화이트 데이날에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본 적이 있었는데, 거의 ‘두개의 문’과 막상막하로 데이트무비로서는 부적합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 두 작품에 대해서 블로그에서 길게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이 두 작품이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과는 다른 생각들을 분명 가지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서 확신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블로그는 내 다이어리의 성격도 있고, ‘읽었던 책은 모두 적어본다’는 원칙도 있어서 간단하게나마 개인적 감상을 적어보려고 한다.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의자놀이보다는 두개의 문이 더 균형잡힌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두개의 문이 의자놀이 보다는 비교적 자제하는 목소리 톤으로 쓰여져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시선 자체가 두개의 문은 ‘경찰들’의 시선이라고 느꼈다. (함께 영화를 본 와이프는 동의하지 않았기에 시각의 차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점이 이 다큐멘터리 영화의 신선함이고, 뛰어남이었다. 용산참사는 피해자의 시선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경찰들의 눈으로 보면 또 다른 희생자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자놀이에는 독자가 판단할 여지가 많지 않은 것 같지 않았다. 사상자의 숫자도 쌍용차 사건이 훨신 더 많고, 그 주제와 나와의 연관성 (기업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측면에서)도 용산참사보다는 쌍용차 사건이 더 높지만, 의자놀이에는 중간중간 추측들이 들어간 부분이 있어서 그런지 절대적으로 진실에 다가간다는 느낌은 조금 덜 했다. 반면 두개의 문은 한발짝 물러선 시각이지만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게 느껴졌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 두 작품에 대해서는 이렇게 무미건조하고 짧은 감상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전반적으로 두 작품을 통해서 느낀 것은 아직도 우리가 야만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야만의 시대에 대한 책임은 분명 어느 한쪽에 더 크게 있지만, 100% 전적으로 어느 한 쪽에만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야만으로 넘어가는 선이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것 같아서 섬뜩할 뿐이다.
아직 이 두 작품을 안 보신 분들이라면 한번쯤 볼 것을 권한다. 지난 5년간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 중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들임에는 분명하니 말이다.


두개의 문…다양한 시각으로 어떤 이슈를 볼수 있다..그리고 우리의 그 다양한 시각을 지배하는 야만한 찬 하나의 시각이 우리의 다양한 시각을 통제한다..그게 우리의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