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가 중국에서는 절대로 성공 못할꺼라고 !?!

이번학기에 듣는 수업 중에서 Current topics of strategy and investment in China 라는 수업이 있다. 이 수업은 맥킨지 상하이 오피스에서 일하는 파트너들이 베이징까지 비행기를 타고 와서 늦은 저녁에 이뤄지는 수업이다. 이 수업을 통해서 나는 현재 중국 시장에서 일하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실무에서 일하는 컨설턴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수업에서 얼마전에 재미있는 토론이 있었다.

지금 중국의 스타벅스에 투자하는 것이 맞을까?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스타벅스가 아니라, 중국의 스타벅스만 떼어놓고 봤을때, 과연 지금의 중국 스타벅스의 미래는 밝을 것인가?라는 것이 질문의 핵심이었다.

나를 비롯한 많은 international 학생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스타벅스의 성공 가능성이 높고, 당연히 투자해야 한다는 쪽에 손을 들었다. 하지만 중국인 학생들은 스타벅스의 중국에서의 비즈니스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이었다.

물론 스타벅스가 중국에 들어온지 몇년 되지 않은 초기단계라서 중국인들이 그 브랜드에 대해서 친숙하지 않은 경우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1999년에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 다니던 시절, 마케팅 수업에서 스타벅스의 value proposition에 대해서 발표했다가, 많은 학생들이 부정적으로 반응했던 기억이 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1) 가격이 너무 비싸다. 2) 한국의 커피 문화는 서빙을 받아야 하는데, 서빙을 해 주는 사람도 없다. 3) 의자가 불편하다. 4) 담배를 피울 수 없다. 5) 인스턴트 커피나 캔커피에 길들여진 한국인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 등이었다. 당시에는 이대 앞에 스타벅스 안테나샵이 하나 있을 뿐이었고, 강남역에 처음 스타벅스가 들어선지도 얼마 안된 상황이었기에 사람들이 이런 서비스를 낯설어했다.

하지만 중국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중국에 스타벅스가 들어온 것은 한국이나 일본에 스타벅스가 들어온 것과 거의 비슷한 시기이다.

중국 학생들이 스타벅스가 성공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1) 중국은 차(tea)문화이므로 커피가 성공하기 힘들다. 2) 스타벅스 커피는 중국인의 소득수준을 고려할 때 너무 비싸다. 3) western culture를 동경하는 매우 niche target에 국한되어 있다. 등과 같은 이유에서 였다.

사실 MBA와 같이 business school 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단순히 culture 나 habit을 이유로 사업의 타당성이 매우 낮다고 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그런 생각을 뒤집어서 기회로 볼 수도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중국에서의 스타벅스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이런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중국인 친구들이 많았다.

수업이 끝나고 나와 친한 나의 일본인 친구는 저녁을 먹으면서 계속 discussion을 이어갔다.

일본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번화가에 가면 한 블록 건너서 스타벅스가 있고, 스타벅스 뿐 아니라 그와 비슷한 형태의 비즈니스모델을 가진 커피 전문점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생각할 때 중국 친구들과 유전학적으로 많이 다른 것 같지 않다. 그런데, 그 일본 친구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커피를 너무너무 사랑한다. 도대체 왜 많은 친구들이 중국에서 스타벅스는 안된다고 할까?

이 이야기는 결국 우리의 커피 사랑에 대한 담론으로 이어졌다가, 중국의 커피 역사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어떻게 이렇게 커피를 많이 마시게 되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대한제국의 고종황제께서 커피를 즐기셨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한가지 우리나라와 일본의 공통점을 찾은 것은, 바로 스타벅스가 들어오기 전에도 이른바 ‘다방’ 이나 ‘커피숍’ 이라는 이름의 뿌리깊은 커피 문화가 자리잡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국과 일본 모두 아저씨들이 담배를 피우며 사업 이야기를 하고, 릴렉스 하던 다방과 커피숍 문화가 성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형태의 커피 문화는 바로 인스턴트 커피 문화였다. 맥심 커피믹스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의 인스턴트 커피는 어떤 회사에 가던지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막대한 양이 소비되고 있다.

그런데 예전에 누구에게선가 이런 인스턴트 커피는 매우 특이한 형태의 커피로서 전세계에서도 한국, 일본, 독일 등의 일부 마켓에서만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흠….

도대체 왜 그럴까?

우리의 토론은 계속되었다.

그렇다. 아마도 미군들이 가져왔을지도 몰라…

한국과 일본의 공통점은 미군정이 오랫동안 들어서 있었다는 점이고, 미군들이 많은 양의 서양문명을 들여오는데 공헌한 바가 있다.

내가 한국의 부대찌게 이야기를 내 일본인 친구에게 해 주었더니, 그 친구도 일본에서 미군기지가 있는 오키나와 같은 곳에서는 스팸이 매우 인기가 많다고 했다.

가설일 뿐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한국의 커피 사랑은 미군들이 가져온 인스턴트 커피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미군들이 처음 한국이나 일본에 왔을 때는 군인들이었기 때문에 커피 빈을 가져오기도 힘들었을 것이고, 에스프레소 문화보다는 간편한 인스턴트 커피를 즐겼을 것이고, 이들과 교류가 많던 당시의 사회 지도층들이 이를 따라서 인스턴트 커피를 즐기기 시작하고, 이런 문화가 60년대, 70년대에 계속 확대되어서, 80~90년대에 이미 한국과 일본에는 뿌리깊은 커피숍 문화가 자리잡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중국에게는 그런 뿌리깊은 커피문화가 생성될 경험이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나의 가설이다. 그래서 자꾸만 중국 학생들은 이미 뿌리깊게 자리잡은 차 문화를 강조한 것은 아닐까?

시간은 이미 11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잠자리에 드는데도 계속 이 생각이 났다.

사람들이 어떤 비즈니스 모델이 안될거라고 하는데에는 ‘문화’ 혹은 ‘습관’이라는 말을 정말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다시 잘 생각해 보면, 그 이면에는 ‘습관의 역사’ 라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중국인이 스타벅스 커피에 중독되는데까지는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2 thoughts on “스타벅스가 중국에서는 절대로 성공 못할꺼라고 !?!

  1. 아는 분이 이 포스팅을 읽고 아래 글을 찾아서 보내주셨습니다.

    ~*~*~*~

    식후 한잔의 음료, 슝늉에서 이젠 커피로
    – 우리의 숭늉 vs 서양의 커피

    20, 30년대 지식인과 예술가 사이에서 유행했던 다방
    구한말 때인 19세기말. 알려진 바로는 1895년 고종황제가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면서 커피를 처음으로 마셨다고 한다. 그후 1902년 러시아 공사 웨베르의 처형인 독일계 러시아인 손탁(Sontag:孫澤)이 고종의 후원으로 문을 연 `손탁호텔’에 커피점이 생겼는데, 이것이 우리 나라 최초의 커피점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까지 커피를 마시는 것이 습관으로 되지 않았던 당시의 한국인들이 커피를 맛보려면 손탁호텔에 있었던 커피점인 `다방’과 같은 곳에 가야했다. 이러한 다방은 처음에 몇 군데 되지 않았지만 날이 갈수록 늘어갔다. 손탁호텔 이후 일본인이 문을 연 `청목당(靑木堂)’이라는 살롱이 생겼고, 1914년에는 조선호텔이 생겨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 1920년대 이후 서양문물에 눈을 뜬 지식인들이 늘어나면서 본격적인 다방이 서울의 명동과 종로에 생겨났다. 1930년대부터는 영화인·화가·문인·음악가들이 직접 운영하는 다방이 서울의 명동·종로·소공동·충무로 일대에 수십 군데씩 문을 열었다. 당시의 다방은 식민지 말기에 패배한 지식인들의 집합소와 같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유행가를 들으며 자신의 나약함을 일상 속으로 숨겨 버렸다.

    인스턴트 커피의 출현으로, 세계적인 음료로 발돋움
    커피가 본격적으로 세계성을 확보한 것은 1940년대에 들어와서 개발된 인스턴트 커피 덕분이었다. 그 이전까지 커피열매를 볶아서 그것을 끓는 물에 넣어 만들었던 원두커피가 주류를 이루었는데 인스턴트 커피가 나오면서 커피는 일약 세계적인 음료로 자리잡았다.

    사실 인스턴트 커피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 군인들을 위해서 미국에서 개발된 것이다. 그 편리성이 이전의 원두커피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여서 그 이후 급속하게 전세계에 퍼졌다. 이것이 한국 전쟁때 미군에 의해 한반도에 들어왔고, 이때부터 커피는 한국에서도 대중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제사정이 좋지 않았던 1950년대 한국정부는 커피를 공식적으로 수입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미군부대의 피엑스를 통해서 유출되어 나온 것을 겨우 사서 마셨다.

    식후 한잔의 입가심, 숭늉에서 어느새 커피로
    한국전쟁 때까지만 해도 한국인들이 즐겨 마신 음료는 숭늉이었다. 한국인은 밥을 중심으로 한 식단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음료도 밥을 지을 때 나온다. 특히 부뚜막에 고정된 무쇠 솥에 쌀을 앉혀 밥을 짓는 방법은 솥을 씻는 과정에서 반드시 숭늉을 만들어냈다.

    짜고 매운 반찬 위주로 구성된 한국의 전통식단에서 숭늉은 입안을 정화시켜주는 구실을 했다. 밥이 되는 과정에서 물이 쌀 속으로 모두 흡수되면 뜸 들이는 과정에 들어간다. 솥의 바닥은 물기가 없어져서 200℃ 이상이 된다. 이렇게 3∼4분이 지나면 솥바닥의 쌀밥은 갈색으로 변하고, 이 과정에서 전분이 분해되어 포도당이 된다.

    밥에 뜸이 다 들었으면 주걱으로 밥을 푼다. 밥을 다 푸고 나면 반쯤 익고 반쯤 탄 누룽지가 솥 밑에 남는다. 여기에 물을 부어 밥 먹을 동안 다시 끓이면 달고 구수한 맛을 내는 숭늉이 된다.

    그런데 1955년 일본에서 전기밥솥이 개발되었고, 1960년대 중반에는 한국에서도 전기밥솥이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숭늉은 서서히 사라졌다. 원래 일본인들은 밥을 지을 때 숭늉을 만들지 않는다. 그들은 무쇠 솥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밥을 푸고 나면 나오는 누룽지를 버린다. 그러니 그들이 만든 전기밥솥에서 숭늉이 나올 리 없다.

    이렇게 전기밥솥의 유행으로 숭늉이 사라지는 시점에 갑자기 커피 수요가 증가했다. 마침내 정부에서는 인스턴트 커피를 국내에서 생산하기 위해 1968년 동서식품을 커피 수입 대체 산업체로 설립하기에 이른다. 이때부터 인스턴트커피가 국내에서 직접 생산되어 국내 소비자들의 욕구를 달랬다.

    구수한 맛이 공통분모인 커피와 숭늉
    사실 한국인에게 커피는 서양적인 산물의 상징이었다. 커피를 마신다는 행위는 도시적인 분위기를 제공해 주었고, 커피 향은 된장찌개 냄새처럼 구수하면서 촌스럽지 않았다. 아울러 커피는 한국인이 전통적으로 마셔왔던 숭늉이나 식혜와 같은 단맛 나는 음료들을 대체하는 데 홍차보다 훨씬 알맞았다.

    영국인들이 홍차에 설탕을 타서 먹으면서 단맛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켰다고 한다면, 한국인들은 커피에 설탕과 우유를 타서 먹으면서 구수한 단맛을 만족시켰다. 19세기말 고종임금이 처음 마셨던 커피는 모난 설탕덩이 속에 커피가루를 넣은 것으로 설탕이 녹으면서 커피가루가 퍼져서 빛깔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한국인들이 일찍이 접했던 커피는 설탕과 조합이 된 커피였다.

    인간이 단맛을 좋아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커피를 좋아하게 된 배경에는 숭늉의 구수한 맛을 잃어버리면서 그것을 커피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른바 블랙커피보다는 다방커피를 더 즐기는 한국인의 모습에서 숭늉과 커피의 상관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글 주영하 세종대 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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