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의 로마서 강해

도올 김용옥의 로마서 강해를 읽었다.

평소 도올의 강의를 종종 즐겨 보고/듣는 나는 얼마 전에 이 책에 대해서 우연히 듣게 되었고 사서 읽게 되었다. 나 스스로는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항상 기독교의 사상에 관심이 있었고, 로마서를 도올의 언어로 풀어서 들어볼 수 있다는 것은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서 구매해서 읽게 되었다.

약 5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고 말할 수 있겠는데,

처음 절반의 250페이지는 ‘입오’라는 이름으로 도올이 ‘로마서’와 ‘바울’ 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나름 배경 설명을 해 주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이나, 기독교에 대한 역사적, 철학적 배경에 대해서 꽤나 자세하고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희랍과 유대문화 그리고 기독교의 역사에 대해서 조금은 더 알게 된 것 같다. 도올의 해박한 지식으로 기독교를 기독교 단편적으로 보지 않고, 그 전과 후, 그리고 당시의 유대인 집단을 둘러싼 다양한 역사적, 종교적 맥락에서 해석하는 내용들이 꽤 깊이 있게 다뤄져서 좋았다.

후반의 250 페이지에서는 이 책의 제목에 충실한 로마서 강해를 하고 있다. 로마서를 일정한 길이로 잘라서 각 부분에 대한 도올의 설명을 붙이고 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이 후반부는 내용이 아주 꼼꼼하지는 않다는 느낌이 든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부분은 과감하게 설명을 생략한 부분들도 꽤 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좀 의아할만큼 설명이 건너뛰는 부분들도 더러 있는 것 같아서 조금 아쉬운 느낌은 든다.

고로, 이 책의 백미는 전반부 250페이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후반부 250페이지 부분은 그냥 대충 봐도 될 정도라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는 저자가 박근혜 탄핵 정국 속에서 쓴 책이라서 책을 집필하던 당시의 생각이나 시대현실이 많이 언급되어 있어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 철학자의 현장성 있는 글을 접한 점도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이 아닌가 싶다.

Page 240

바울은 고린도교호의 교인들을 향해 이 말을 하기 전에, 그는 이것이 자기 자랑이라고 늘어놓은 것이므로 매우 쑥스러운 듯이 변명조의 말을 한다. 그러면서 이러한 자랑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고린도교회의 교인들이 자기가 없는 동안 자기가 세워놓은 그 교회를 등쳐먹으려고 꼬여드는 많은 랍비류의 인간이나 사기꾼 전도사류의 인간들의 꼬임에 넘어가는 어리석음을 일깨우기 위함이라는 것을 변명한다. 19절에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도 용납하는구나”라는 말은 그런 뜻이다. 지혜롭다고 자처하는 너희들이 어떻게 그런 사기꾼들을 용납할 수 있냐고 책망하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약은 고린도사람들이 거짓사도들을 받아서 폭군처럼 자기들을 종으로 부리게 하고, 그들의 호사스런 생활의 밥이 되며, 그들의 출세를 위한 이용물이 되고, 거짓된 자만에 희생되며, 어떻게 그깟 새끼들에게 따귀까지 맞으면서도 용납하는 그런 어리석고도 교만한 인간이 되었는가 하고 통탄을 한다.

이러한 바울의 통탄은 우리나라의 양심적 지성인들이 우리나라 대형교회 목사님들의 추잡스럽고 거만스러운 횡포를 바라보면서 개탄하는 언사와 크게 다를 바없다. 바울은 마음이 여리어 차마 그 따위 거짓사도들의 독재, 탐욕, 거짓, 교만, 폭력의 가증스러운 짓을 못했기 때문에 교인들에게 연약하게 보였다고 한다면, 이제 나도 교만하게 당돌히 내 자랑을 한번 해보겠다고 말하면서 늘어놓은 내용이, 죽도록 수고하고, 옥에 갇히고, 수없이 매도 맞고, 채찍질도 당하고, 난파당하여 망망한 바다를 헤매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자랑이다.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자랑이다.

바울이 어떠한 그릇된 사상이나 환상을 가졌든지간에 나는 바울이 자기신념에 헌신한 진지한 태도, ‘중용’이 말하는 지성무식의 덕성, 그리고 역경을 헤쳐나가는 불굴의 용기, 그리고 극도의 금욕주의적 삶의 태도에, 약관의 나이에도 못 미쳤던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바울은 나에게 살아있는 한 인간이었다. 상기의 언급은 살아있는 바울이 실제로 독백한 내용이다. 고린도전후서의 바울저작성은 전혀 의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중략)

나는 이 바울의 고백으로부터 인간의 겸손을 배웠다. 그리고 나의 질병 앞에 내가 겸손해지는 법 또한 배웠다. 이것이 내가 바울과 해후하게 되는 시말의 전부였다. 존재의 확신은 존재의 확신을 다 포기함으로써 얻어지는 현묘지경이다. (중략) 내가 이 책을 쓰기 시작한 시점은 온 국민이 박근혜를 탄핵하기 위하여 촛불을 들고 거리고 쏟아져 나오는 카이로스였다. 나는 그때 국민들과 더불어 행진을 하면서 최초로 내 생애에서 절실하게 ‘십자가’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 아마도 바르트가 바르멘선언을 외칠 때의 심정과 상통하는 그 무엇이 뭉게뭉게 나의 의식의 지평 위로 피어오를 때였다.

바르멘선언은 이와 같이 시작한다: “성서 안에서 우리에게 입증된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들어야만 하는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가 삶에 있어서든지 죽음에 있어서든지 믿고 복종해야만 하는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는 독일의 교회가 이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을 배제하고 넘어서서, 다른 역사적 인물 (히틀러)을 하나님의 계시로서, 선포의 근원으로서 인정할 수도 있다고 하는 거짓된 이론을 단호히 배격한다…”

바로 이러한 것이 신앙의 양심이요, 시대에 항거하는 종교의 소명이다. 바로 우리가 공부하고자 하는 바울의 로마서 12장에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라는 바울의 정언명령이 쓰여져있다. 바울은 고린도라는 항구도시에서 로마인들을 향해, 아니 전세계의 양심들에게 이런 글을 외롭게 쓰고 있었던 것이다. 약관의 나이에도 미치지 못했던 내가 조선의 동포들에게 바울을 강론하면서 이 한마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Do not be conformed to this world’ 라는 바울의 이 한마디는 나의 가슴에 깊게깊게 새겨졌다.